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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이야기/생각 나누기

다시 보는 불도저를 탄 소녀 그리고 ...

by 홍단이다! 2024. 6. 17.

예전에 봤던 '불도저에 탄 소녀'를 김혜윤이라는 배우 때문에 다시 보았다.

 

다시 보니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봤을 때는 여주 혜영의 무모함에 대한 안타까움만 느껴졌고 그녀의 선택들이 어린치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녀가 한 모든 선택은 그녀에게 최선이었다.

 

19살의 혜영은 왜 문신을 했을까?

 

혜영이 19살까지 살아오는 동안 받은 대우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함부로'였을 것이다.

엄마가 없다고 가난하다고 배운 게 없다고 세상이 그녀를 얼마나 함부로 했을까?

편의점 알바생으로 만난 일진들과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누가 봐도 무모한 싸움이다. 삼대 일로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혜영은 다음은 생각하지 않고 덤볐다.

싸우고 맞고 다시 싸우고 그리고 위협하는. 

약한 그녀가 강하게 보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문신'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영에게 남은 것은 오직 '화' 뿐이다.

 

없는 살림에 경마장에 가서 돈을 날리고 의료보험료도 밀리는 아버지.

아버지의 외유에 방치되는 어린 동생, 혜찬.

수시로 일어나는 폭생시비와 간이 판결, 그리고 교육.

그렇게 간 중장비 교육장에서는 "여자는 그럴 배워봤자 쓸데가 없어."라는 소리나 듣고.

아버지의 사고로 조퇴를 하려는데 알바점은 그냥 해직을 알리고.아버지는 8년전 그만 둔 회사 차량을 훔쳐 도주하다 사고가 나 뇌사상태고.

이런 혜영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야 '화'밖에 더 있겠는가?

 

혜영의 선택은 그저 무모한 것이었을까?

 

아버지 사고를 추적하다 알게 된 자신의 중국집에 대한 부당한 이주 강요.

항의해봤자 약하고 증거가 없다고 무시당하는 소녀.

맞고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나약한 존재.

 

확실한 증거가 있는 핸드폰을 다른 곳에 복사하지 않고 그냥 가지고 가서 뺏기고 맞고 매도 당하는 모습에서

나는 처음 그녀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 사람들이 그렇게 순순히 다 인정하고 내줄 줄 알았나?

그래서 혜영의 선택이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다시 보니 그녀가 복사본을 만들었다고 달라졌을까? 마찬가지 결과였을 것이다.

19살 혜영은 순진했던 것이다.

아직 어렸던 것이다.

 

마땅히 존중받고 귀하게 여겨져야 할 19살 혜영은 이리저리 치이고 함부로 다뤄지고 건드려졌다.

 

그런 혜영이 세상에 대고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 명의 일진들에겐 문신이 먹혔겠지만 기업가, 세상의 부조리에는 문신이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그 어떤 것보다 크고 단단한 불도저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불도저는 그녀에게 문신이자 갑옷이고 탱크이자 몸부림이었다.

 

김혜윤주연 '불도저에 탄 소녀' 해외예고편 - (The Girl on a Bulldoze - Official Trailer) (youtube.com)

 

 

지금이라도 이런 훌륭한 영화가 해외팬들을 비롯한 대중들에게 재평가 받길 바란다.